물숨을 쉬고 사는가? 믿음의 숨을 쉬고 사는가?
디모데전서 1:12-17
디모데전서 1:12-17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말씀요약
제목: 물숨을 쉬고 사는가? 믿음의 숨을 쉬고 사는가?”
디모데전서 1:12-17
제주 해녀들에게는 ‘물숨’이라는 금기어가 있습니다. 물질을 하다 숨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욕심으로 더 내려가 쓰는 숨을 ‘물숨’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해녀들의 철칙은 “덜 가져도 반드시 돌아온다”입니다. 무리하면 바다는 생명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물 밖으로 나와 내쉬는 ‘숨비소리’는 살아 돌아왔다는 증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 살지만, 삶의 기준은 하늘에 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끊임없이 더 욕심내고, 더 붙잡고, 더 내려가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유혹 앞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욕심의 숨으로 살면 결국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수많은 말들이 떠도는 세상 가운데 반드시 붙들어야 할 한 문장을 제시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이 고백은 믿을 만한 참된 말이며, 모든 사람이 반드시 붙잡아야 할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세상은 죄로 눈이 멀고 멸망을 향해 가는 곳이었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타락은 잔인한 열매를 맺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아들을 보내어 죄인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죄와 죽음, 심판에서 우리를 건져내기 위함입니다.
‘죄인’이라는 말은 단지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를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음을 말합니다. 바로 그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이 복음을 만난 인생은 반드시 변화를 경험합니다. 상처와 중독, 절망 속에 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 새 삶을 살게 되는 수많은 간증이 이를 증명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이 복음은 지금도 살아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결단의 자리로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 미쁜 말씀 앞에서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이미 믿는 성도라면, 영적인 무기력과 무관심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다시 믿음의 숨을 회복하시길 축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2026년 표어 “기도와 눈물의 제단을 쌓게 하소서”를 붙들고, 20131운동에 헌신하는 이유입니다.
20명의 중보자가 기도의 숨을 쉬고, 13명의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한 주에 한 번 강단 앞에 모여 눈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의 작은 순종은 생명의 물줄기가 되어 이 지역과 열방을 살리게 될 것입니다. 덜 가져도 반드시 돌아오는 삶, 욕심의 숨이 아니라 믿음의 숨으로 사는 삶.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으며, 기도와 결단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